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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천장

(@L_chloe_madam)

글: 량이

(@bina_0718)

천장.png

[레이디버그 시점]

"안녕하세요, 미라큘러스 의뢰부입니다."

  내 이름은 마리네뜨, 직업은······ 비밀경찰 같은 거라고나 할까. 낮에는 '마리네뜨'로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코드네임 '레이디버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대체로 잠입한 스파이를 찾아내거나, 테러범을 잡는 것이 내 임무다. 좀 위험하긴 하지만, 사람들을 구해주는 것에 의의가 있고, 파트너도 나름 재미있기 때문에 할 만 하다.

  아, 파트너 소개를 안 했네. 내 파트너는 코드네임 '블랙캣'으로, 끊임없이 나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친구다. 그래도 뭐, 나름 보다보면 재미있다. 위험한 일이다 보니, 배신의 위험을 감안해 파트너와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일하고 있어, 이름, 나이 등의 개인적인 정보는 아무것도 모른다.

  오늘은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다. 그래, 요즘 떠들썩하지. 파리 시내에서 1차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게다가 범행 현장에서 2차 테러를 저지를 다음 범행 장소와 시각이 쓰인 쪽지가 발견 되었으니. 쪽지를 추리해보니 2차 범행의 장소와 날짜, 시각이 나왔다.

  『파리 결혼식장 / XX월 XX일 / 11시 06분』

'미리 이런 추리 소설에나 나올 법한 쪽지로 언질까지 하는 거 보면 스릴을 즐기는 놈인가? 하여튼 이렇게 된 이상, 범인은 다음 쪽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현장에 있을거다. 그렇다면 방법은 잠복뿐인가······.'

"블랙캣, 임무 나왔다. 파일 읽어봐."

"아, 또 내가 나서줘야 하는건가~?"

"장난치지 말고. 파리 1차 테러사건 알지? 그거 2차 잠복 장소랑 시각 풀었다. 잠복해야겠어."

"어디에? 결혼식장에?"

"그래······. 우리, 결혼하자."

"갑자기 결혼을? 나야 좋긴 한데~-"

"아니, 위장결혼. 그냥 잠복하고 있으면 누가봐도 수상하잖아. 평범한 사람 결혼식에 경호원이 있는 것도 이상하고. 그리고 대놓고 경찰들이 죽치고 있으면 범인이 다시 나타나겠냐."

"흐음. 확실히 그렇겠네?"

  나는 파리 결혼식장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위장결혼을 위한 협조를 부탁했다. 진짜 결혼하는 게 아니니,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벌써 잡은거야, 마이 레이디?"

"응. 왜?"

"그래도 이왕 하는거, 좀 제대로 해보자. 마이레이디는 어떤 드레스가 가장 어울리려나? 뭐든 잘 어울리긴 하지만-"

"그게 나으려나? 그럼······ 그러자."

 

  뭐든 허술하게 하는 것 보다는 제대로 하는게 나을 것 같았다. 블랙캣과 드레스도 알아보고, 요원들을 모아놓고 축가도 연습했다. 부케, 화관, 가면 대신 쓸 검은 면사포, 드레스, 정장, 신발 등의 입을 옷부터 배경음악, 혼인서약서, 성혼선언문 작성 등등 생각보다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제 거의 다 끝났다! 드레스 알아보러 가자~"

"휴, 그래."

  아직 끝난게 아니었다니, 한숨부터 나왔지만 많은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블랙캣은 그냥 신난 것 같았다.

"블랙캣, 안 힘들어?"

"으으응, 마이 레이디랑 결혼할 예행연습 하는건데 뭐. 나중에 마이 레이디랑 진짜 결혼할 때 필요하니까, 열심히 외워둬야지."

"어휴, 말이나 못 하면."

 

  그래도 막상 가보니, 예쁜 드레스들이 가득 있는 풍경에 기분이 좋아졌다. 난생 처음보는 예쁜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놀라 멈춰섰지만 블랙캣은 매우 좋아했다.

"이런, 이거 진짜 마이 레이디랑 결혼하는 것 같잖아~! 너무 설레는걸."

"착각말고 집중이나 해. 어, 이거 어때?"

"음, 그것보단 이게 나은걸? 물론 마이 레이디 마음에 든다면 난 다 좋지만 말야~"

"아휴, 그럼 네가 골라라."

"아님, 우리 서로 옷 골라주기 할래?"

"좋아, 야옹아."

 

  블랙캣은 밑으로 갈 수록 풍성하고 예쁘게 퍼지는 예쁜 드레스를 골라왔다. 다리가 트인 심플한 흰색 드레스였다. 위쪽은 타이트하면서도, 아래쪽은 하늘거렸다. 쇄골을 덮는 검은 망사 부분이 검은 면사포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하여간 센스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오, 괜찮은데? 심플하고 예쁘네. 이걸로 하자."

"좋았어, 마이 레이디. 이제 내 옷 골라줄래?"

"응······."

 

  처음 골라보는 정장에 어떻게 골라야 할지 몰라, 아드리앙이 입으면 어떨까, 생각하며 골랐다. 아드리앙이 내가 고른 정장을 입은 모습을 상상하자, 자연스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거 마음에 들어? 미소짓는 걸 보니."

"아, 음······. 좀 더 둘러보자."

  블랙캣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아드리앙을 좋아하니까······. 아드리앙은 나와 같은 반 친구로, 블랙캣처럼 밝은 금발에 짙고 깊은 녹색 눈을 가졌다.

  태양처럼 찬란한 그 금발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될 걸. 울창하고 신비한 숲을 담은 듯 한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그 황홀감에서 헤어나오지 못 할 것이다.

"왜 자꾸 멍 때리면서 웃고 있어? 좋아하는 사람 생각이라도 하는듯이······."

"윽······, 그런 거 아냐. 이건 어때?"

"뭐, 마이 레이디가 골라준다면 나야 다 좋지."

"음, 좋아. 그럼 이걸로."

"좋았어, 오늘 일정 끝!"

 

[블랙캣 시점]

  여러 일로 바쁜 한 달이 지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 날이 되었다. 반드시 범인을 잡고 말리라 다짐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잡념을 떨쳐내려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준비 됐지?"

"물론."

  결혼식장으로 가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정장을 고르며 해맑게 웃던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미소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녀를 향해 짓는 미소와 닮아있었으니까, 좋아한다는 그 사람을 상상한 것이리라-.

  그래도 모처럼 기다리던 그녀와의 결혼식인데, 이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그녀의 결혼상대가, 내가 아닐지도 모르니까······.

"도, 도착했다. 정신 바짝 차려!"

"응, 마이 레이디."

  한평생을 모델로 살면서, 좋아해주는 사람은 수없이 많았어도, 좋아하는 사람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좋아한다면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보내줘라? 아니,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내 것이 아니고서 그녀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절대로 포기치 않으리라. 그녀가 나를 바라봐 줄 때까지, 나를 바라보도록 무슨 일이든 하리라. 그것이 내가 생각한 나의 모토였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든 생각. '정말로, 정말로 그녀를 억지로 붙잡아 두는 것이 그녀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 아니, 그건 그녀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기적이었고, 그만큼 그녀가 아닌 날 위해 행동했다. 정말로 그녀를 사랑한다면, 나의 행복이 아닌 그녀의 행복을 도왔을 테니까.

  하지만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그녀의 나침반은 누군갈 향하고 있었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게 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구의 자기장이 뒤틀리지 않는 한, 절대로 바뀌지 않는 나침반의 바늘은 내가 함부로 어쩔 수 없으니까.

  내 나침반도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의 나침반을 어떻게 다룰 수 있겠어······. 그래서 난 그녀를 기다리지만, 그녀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놓아주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레이디버그 시점]

"아! 깜빡할 뻔, ······크흠."

  블랙캣에게 깜빡한 전달사항을 말해 주려다, 창 밖을 내다보는 그의 착잡한 시선에 그대로 말을 삼켜 버렸다. 단지 임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 서글픈 눈으로. 말은 그렇게 했어도 무서웠었던 건가?

  임무 때문이라기엔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도 진지해 보여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도록 두기로 했다. 다행이도 그는 생각에 잠긴 탓인지 내 말을 듣지 못했고, 나는 처음 보는 그의 진지한 모습에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딘가 '익숙한 누군가'를 보는 것만 같았고, 그 '익숙한 누군가'에 의해 심장이 뛰는 것만 같았다. 이 때까지 나는 블랙캣이 익숙해 보이는 이유가 그저 그의 서글픈 눈빛이, 아드리앙을 그리는 내 모습과 닮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눈빛······. 그렇다면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굴까? 왜 임자 있는 이의 마음을 마음대로 빼앗아 놓고선, 저리 서글픈 눈을 하고 있는 걸까?

  내 머릿속은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처음으로 그의 선에 가까이 다가갔고, 이를 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애초에 왜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았던 거지?

  아, 그 날. 그래, 그 날 이후로. 우리에게 선이 생긴 건, 네가 나에게 처음으로 고백했던 그 날이었다.

  처음부터 신변 보호를 위해 가면은 썼지만, 어차피 이롬도, 얼굴도 모르는데 이렇게 선을 긋고 지낼 필요는 없었고, 그러지도 않았다. 그 전까진, 그저 장난으로만 받아들였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나, 널 좋아하게 된 것 같아."

"······뭐, 뭐라고?"

"나도 알아, 미친 소리라는 거.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임무 몇 번 같이 뛰었는데 좋아한다는 게······."

"알면서 왜 그런-"

"좋아하는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

"당황스럽지? 나도 그랬거든······. 그냥 알아만 둬~. 대답을 강요하진 않을게, 마이 레이디."

"진심이라면······, 미안해.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

  그 때부터 블랙캣은 나를 마이 레이디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생겼다.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말들이, 이젠 이해 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라, 다시 생각해 봐도 역시 그 말보다 지금 내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말은 없을거야.

  그래도 역시, 너무 늦어 버렸나. 지금은 날 좋아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그 이후로는 블랙캣이 날 항상 장난식으로 대했기에 그가 날 포기했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차피 내겐 언제까지나 아드리앙뿐일거라고 생각했었기에, 당시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 정말······ 좋아한다는 건, 마음대로 되지 않네······.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까만 가면으로 덮힌 높은 콧날이 보였다.

'······블랙캣 콧날이 저렇게 높았었나?'

  여전히 박탈감에 젖은 눈으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그였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심장이 요동치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나에게 외면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블랙캣에게 심장이 뛴다고 해서, 아드리앙에게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느새 차는 예식장으로 도착했고, 그는 도착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했다.

"도, 도착했다. 정신 바짝 차려!"

"응, 마이 레이디."

  '마이 레이디'라는 말에 얼굴이 다시 달아 올랐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어색하게 앞장서 걸었다. 내가 보기에도 어색한 걸음은, 어디에도 서지 못하고 쭈뼛대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드레스를 갈아 입으러 들어갔다.

"휴, 겨우 갈아 입었다······. 이거 입는 게 은근히 힘들다니까. 어때?"

"······."

"왜 말이 없어? 그렇게 별로야?"

"아, 아니. 너무 예뻐서······."

"뭐, 뭐래~. 너도 빨리 옷 갈아입고 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블랙캣이 귀여웠다. 그냥 말로만 하는 칭찬이라도 기분이 좋았고, 항상 듣던 말이라도 감회가 새로웠다. 괜히 설레고 들떠서 일을 망칠까봐, 심호흡을 하고 마이크와 헤드셋, 무전기를 착용했다. 그리고 잠시 뒤, 옷을 갈아입은 블랙캣이 나왔다.

"······나 어때?"

  블랙캣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내게 물었다. 반짝이는 조명 때문일까, 멋진 정장 때문일까. 오늘따라 블랙캣이 더 멋있어 보였다. 내 심장은 다시 요동쳤고,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 그를 껴안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

"뭐, 옷이 날개네. 임무나 가자~."

"그래서 멋지다는 거지, 마이 레이디?"

  블랙캣은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그렇게도 칭찬 받는 게 좋은 걸까······. 아니면, 아직 나를 좋아하는 걸까.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신랑, 신부 입장 해주세요!"

"앗, 네!"

"네엡~."

  리허설을 하고 있으니, 진짜 결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테러 사건으로 인한 위장결혼이라고 미리 언질을 두었기 때문에, 현장에 감도는 싸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그 경직된 분위기는 내가 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기도 하니까. 그런 분위기라도 없으면 진짜 블랙캣에게 정신이 빠져 버릴지도 몰랐다.

"신랑은 신부의 손을 꼭 잡아 주세요."

"······."

"······이, 이거 진짜 해요? 위장결혼인데?"

"예······, 그래도 제대로 준비하려면······."

스윽-

  블랙캣은 가만이 내 손을 잡았다. 침착해 보였지만, 잡은 손이 달달 떨리는 걸 보아 그도 많이 떨려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뜨거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봐 주십시오."

  우리는 고개를 들어 서로의 눈을 바라 보았다. 뜨겁다면 뜨겁고, 차갑다면 차가운, 그런 눈빛으로. 하지만 이내 맞닿은 눈길을 그대로 돌려 버렸다. 그를 대하는 게 어색했고, 왠지 평소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신랑은 신부를 사랑하는 만큼 강렬한 키스를 해주세요."

"······."

"그만. 거기까지."

  블랙캣은 다시 눈을 내리깔고 잡았던 손을 놓았다. 계속 손바닥에 맴돌던 그의 온기가 사라지자 왜인지 허전했다. 그가 날 포기 한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더없이 허전하고 공허한, 입고 있던 옷을 벗은 듯 한. 난 어쩌면 그가 떠나가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엇갈린 사랑······.

 

[블랙캣 시점]

"······마지막으로 마이크 점검할게. 잘 들려?"

"응······."

"좋아, 임무······ 잘 끝내자."

  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임무'라는 말만 강조하는 그녀가 애석했다. 그렇게도 내가 별로인 건지······. 그녀가 좋아한다는 사람을 어떨까. 분명히······ 좋은 사람일거야. 그녀에게 과분할 정도로······. 그렇지 않으면 보내 줄 자신이 없으니까.

  "그만. 거기까지."라며 단호한 표정으로 손을 빼던 레이디버그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당연히 부담 되겠지. 그나저나 본식때는 정말······ 하는 건가? 얼굴이 달아오르고 몸이 달달 떨렸다. 레이디버그 앞에서는 침착한 척 려 했지만, 그것마저 실패한 듯 했다.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 괜히 마이크만 만지작 거렸다. 침울해 있는 내가 걱정됐는지, 레이디버그는 긴장하지 말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그럼 너는······ 긴장 안 되는거야? ······정말 나한테 아무 감정도 없구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처음부터 우린 엇갈려 있었는걸. 새삼스럽게, 뭘.

  항상 있었던 일, 항상 듣던 말이라도 감회가 새로웠다. 긴장하지 말라는 말이 이렇게도 아플 수 있는 말이구나······. 그래, 네게 이건  그저 '임무'겠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씁쓸하게 웃으며 바닥을 쳐다 보았다. 나를 위로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령 있었다 해도, 그녀가 아니면 다 무슨 소용이야 ······.

"본식 시작합니다! 신랑, 신부 대기해주세요."

"네······."

  여러 순서가 빠르게 지나갔고, 나도 이젠 임무에 집중하려 사람들의 얼굴을 열심히 훑어보고 있었다. 무대를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레이디버그가,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얼굴을 모두 외우기로 했으니까. 티 안 나게 잘 살펴야 한다······.

  아까 사진으로 외워뒀던 미리 오기로 했던 사람들과 다른 사람을 찾아야 했다. 분명히 저 사이에 범인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무를 수행하는 사이, 주례자의 멘트가 들렸다. 그 멘트를 듣고, 나는 퍼뜩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올 것이 왔다······.

"신랑은 신부의 손을 꼭 잡아 주세요."

(잡아도 괜찮을까, 마이 레이디?)

(응.)

  레이디버그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나는 레이디버그의 손을 잡기 위해 조심스레 손을 뻗었고, 그녀는 이를 허락하듯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이 내 손을 맞잡자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심장은 다시 요란하게 뛰며, 얼굴이 상기 되었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뜨거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봐 주십시오."

  나는 빨개진 얼굴을 감주려 노력하며 레이디버그를 바라보았다. 검은 면사포로 가려진 얼굴은, 실루엣만으로도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지금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안달난 표정은 아닐까. 어느 때보다도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려하던 순간이 왔다.

"······신랑은 신부를 사랑하는 만큼 강렬한 키스를 해주세요."

  멘트를 듣고 난 나는, '그만. 거기까지.'라고 말하던 레이디버그의 표정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다. 그냥 면사포로 가리고 키스하는 척만 하려는데, 익숙하고 달콤한 목소리가 다가와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아직 나 좋아하는 거, 맞지?)

(무, 물, 물론이지······.)

(나도.)

  순간 방금 들은 말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생각하고 있는데, 레이디버그가 작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입을 맞췄다. 너무 당황스럽고 떨려서 심장이 터질 듯 했지만, 그녀는 내 얼굴을 놓을 줄을 몰랐다.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고,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체취가 물씬 풍겼다. 나도 이내 눈을 감고 그녀의 작은 얼굴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왔는데,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게슴츠레 눈을 뜨자,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눈 앞에 있었다.

 

[레이디버그 시점]

(······아직 나 좋아하는거, 맞지?)

(무, 물, 물론이지······.)

(나도.)

  나도 널 좋아한다고, 블랙캣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말은 한 마디면 충분했다.

  생각보다 많이 당황했는지, 빨개진 얼굴로 쩔쩔매는 모습이 귀여웠다. 이내, 나보다 빨리 적응해서 좀 놀라긴 했지만······. 곧 눈을 떠 보니, 블랙캣이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서 얼굴을 가리려 허둥댔지만, 블랙캣은 면사포를 손으로 잡고는 면사포로 우리 둘의 얼굴을 가렸다.

  블랙캣은 (나야, 마리네뜨.)라고 작게 속삭인 뒤, 자신의 가면을 반 정도 들췄다. 가면 속 얼굴은, 아드리앙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아, 아드리앙?)

  아드리앙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하~, 마이 레이디가 좋아한다던 사람이, 설마 아드리앙이었나?)

(······눈치 하나는 빨라가지고.)

  블랙캣은 능글거리는 웃음을 한 번 짓고는, 다시 가면을 썼다. 그 웃음을 이 얼굴에서 보게 될 줄이야······. 면사포 밖으로 나온 그는 헝클어진 내 면사포를 단정히 정리해 주었다. 그 때, 내 눈에 낯선 사람 한 명이 들어왔다.

(3시 방향 수상한 사람 발견, 아까 본 사진들에 있던 얼굴이 아니야.)

(어, 정말이네.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할까?)

[레이디버그 : 아아- 출입문 폐쇄 부탁 드립니다.]

  나는 마이크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고, 블랙캣은 눈으로 그 사람을 몰래 곁눈질 했다. 자칫 잘못하면 현장의 사람들이 위험하니, 아주 천천히 조금씩, 범인이 절대로 모르게 진행해야 했다.

[블랙캣 : 주례자님, 범인이 발견 되었습니다. 멘트 진행 해주세요.]

  주례자는 인이어로 마이크 소리를 듣고는, 멘트를 시작했다.

"이런 좋은 날에는 다같이 즐겨야죠~. 대표로 거기, 검은 자켓 입으신 분은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대놓고 부르면, 뭔가 반응이 있겠지. 반응없이 순순히 와주면 더 좋고~.'

"칫."

  범인은 작게 혀를 차고는 순순히 무대 위로 올라왔다. 주례자는 범인이 더 가까이 오도록 그를 유도했다.

"이쪽으로 오셔서 신랑, 신부를 위한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뚜벅뚜벅-

[하나, 둘, 셋 하면 수갑 채워!]

[응.]

[하나,]

  긴장이 되어 꿀꺽- 침을 삼겼다. 범인은 멀리서부터 살기를 내뿜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둘, 셋! 지금이야!]

[응!]

"당신을 테러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지금부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크윽······, 암호를 어떻게 푼 거지? 당장 날 풀어주지 않으면 설치해 놓은 폭탄을 터트리겠다!"

"터트려 보시던가~. 그래봤자 네 형만 더 늘어나게 될 걸."

"그래, 어차피 저 사람들 다 환각으로 만든 사람들이라. 우리야 탈출에는 도가 텄고."

"역시 과학은 발달하고 볼 일이라니까. 고마워, 레나 루즈!"

  코드네임 레나 루즈는 사진에 있는 사람들을 홀로그램을 이용해 진짜 사람들처럼 만들 수 있었다. 범인이 조금만 더 유심히 사람들을 봤거나 접촉 했었더라면, 미리 알 수도 있었겠지. 사람들을 피해 접촉하지 않은 것부터 매우 수상했다. 뭐, 그래봐야 방금 본인 입으로 암호를 어떻게 풀었냐고 말했으니 다 부질 없겠지만······.

  범인은 곧바로 폭탄 리모콘을 빼앗긴 후, 경찰에 넘겨졌다. 모든 일이 해결 되었다. 한 가지 빼고······.

"마이 레이디, 우린 아직 할 얘기가 남은 것 같은데?"

"아, 그러니까 아까는-"

"나 지금도 마이 레이디를 많이 좋아해. 아까 일은, 네 마음이 바뀌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게~. 아, 동일 인물이었으니 상관없는 건가?"

"그래. 아드리앙에서 블랙캣 너라니. 내 취향도 참 한결같네······."

"뭐, 그럼 됐어. 이제라도 내 매력을 알았으면 됐지~."

"······좋아해, 널. 언제나 좋아했어. 한 번쯤은 알아봐 줬으면 했는데, 너도 날 좋아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

"마이 레이디가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감동인데? 날 많이 좋아했나봐?"

"······그만 좀 놀려."

  조금은 창피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도 있다니. 혼자만 암흑속에 갇혀 버린 느낌을 더이상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장을 입은 블랙캣의 모습이 멋있어서, 웃음이 났다. 모든 게 새로워 보였다.

  그렇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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