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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라버

(@6rra_)

글: 이니

(@INLYM_M)

라버.png

저녁은 나오기 참 좋은 때다. 칠흑의 하늘이 검은 수트를 가려주고 노란 달이 금빛 머리칼을 감춰주는 덕이다. 물론 오늘같이 달이 구름에 가리는 날도 캄캄해서 몰래 나오기 좋은 건 마찬가지다. 이러니 아드리앙이 저녁 마실을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순찰 있는 날에만 나오는 게 좋을 거 같아. 너무 돌아다니다가 우리 정체, 들통나면 안 되는 거 알지?'

 

알지만, 그 말씀을 하시는 여자친구님을 너무도 보고 싶습니다.

 

내일은 토요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으니, 학교에서 만날 수도 없다. 또 언제 빌런이 나타나서 레이디버그로서 그를 만날지도 모른다.

 

결국, 이 방법이 아니면 안 된다는 참 그럴듯한 이유를 대어가며, 아드리앙, 아니 블랙캣은 지붕 위를 뛰어다녔다. 목표는 뒤팽 챙 베이커리. 정확히는 빵집 3층의 마리네뜨의 방이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를 불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불러내면 분명히 혼날 거야.'

 

고개를 끄덕거리며 빵집에 다가가던 블랙캣은 옥상 테라스가 보이는 곳에서 멈췄다. 저녁을 먹고 나온 마리네뜨는 생각에 잠긴 듯 팔에 고개를 괴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이따금 입이 움직이는데, 아마 티키와 얘기를 나누는 중일 거다.

 

항상 같은 레파토리이다. 블랙캣이 몰래 나와 제 여자친구를 발견하면, 먼저,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이며 지켜본다. 시간이 좀 지나 긴장이 사라지고 들키지 않으리란 확신이 그 자릴 채우면 탄식이 새어 나온다. 이후론 마리네뜨를 향한 여러 찬양이 쏟아진다. 아마 변신 상태가 아니라면 플랙은 한참 전에 도망갔을 것이다. 대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치즈를 애타게 찾겠지만.

 

이날도 마찬가지로, 23번째 탄식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눈이 저렇게 물처럼 맑을 수 있지?"

 

누군가는 고개를 저을 그 주접이 입 밖으로 나온 동시에 물방울이 그의 이마로 떨어졌다. 한 방울은 두 방울이 되다가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피해야 했지만,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숨을 곳이 없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곳은 방금까지 마리네뜨가 있던 테라스였다. 마리네뜨가 집 안으로 들어갔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벽에 바짝 기댄 덕에 이젠 비를 맞지는 않지만, 온몸이 이미 흠뻑 젖은 뒤였다. 열다섯 소년은 체온이 떨어지고, 오한이 들기 시작하고, 몸을 떨며 비 그치길 한참이다가 결국엔.

 

"에에취!"

 

재채기가 나왔다.

 

테라스 문이 열린 건 약 30초 이후였다. 그 아래로 마리네뜨의 머리가 올라왔다.

 

"이런, 내가 못 살아."

 

걱정 가득한 얼굴로 멋쩍게 웃는 블랙캣을 지긋이 보던 마리네뜨는 그에게 손짓했다. 들어오란 뜻이었다.

 

 

*

 

 

제일 먼저, 수건이 머리 위로 얹어졌다. 그다음엔 커다란 담요가 어깨 온몸을 감쌌다.

 

"코코아를 타올게. 기다려."

 

매끄럽게 일련의 일들을 끝낸 마리네뜨는 블랙캣을 침대에 앉히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어쩐지 남자친구를 대한다기보단 비에 젖은 고양이를 대하는 느낌인데, 화를 그렇게 삭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5분이 지나 그가 돌아왔을 때, 블랙캣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말리다가 마리네뜨를 보고 하하거리며 팔을 내렸다.

 

"앉아봐."

 

침대에 앉은 마리네뜨가 제 앞을 팡팡 쳤다. 거역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그대로 행한 블랙캣의 손에서 수건이 빠져나가고 코코아가 든 컵이 들렸다.

 

"비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왜 나왔어?"

 

"하하하 원래 비 예보는 안 맞는 편이잖아."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곤 웃으며 대처했지만, 마리네뜨는 넘어가지 않았다.

 

"아까부터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어."

 

변명이 실패한 동시에 블랙캣은 슬쩍 웃음기를 지우곤 눈을 돌렸다. 그 뒤로 마리네뜨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잔소리가 참 좋았단다. 안 그래도 홀짝이는 음료가 달고 따뜻한데 거기에 따뜻한 손이 머리칼을 헤집으니 기분도 좋았고. 괜스레 볼이 붉어지는데, 감기라 착각한 마리네뜨의 어투엔 걱정이 어렸다. 입가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미소를 숨기며 블랙캣은 생각했다.

 

이러니 저녁 마실을 끊을 수 없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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