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르레님
(@dorulald0325)
글: 이은도님
(@tsotbs4_ladybug)

한산한 파리의 다리. 사랑의 마법사가 나타났음을 알리는 종소리와 그의 고풍진 노랫소리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나는야 앙드레~ 앙드레 글라시에~ 사랑의 큐피트~ 한스푼 두스푼 먹다보면~ 마음이 녹아내리네. 나는야 앙드레~ 앙드레 글라시에~ 사랑의 큐피드~ 한 스푼 두 스푼 먹다 보면~ 사랑에 빠진다네."
거리의 연인들에게 앙드레 글라시에는 오늘도 사랑의 아이스크림을 나누었다. 그렇게 모여있던 사람들이 차차 본인들의 시간을 보내러 사라지고 한 소녀가 그의 아이스크림을 찾아왔다.
"안녕 마리네뜨? 또 왔구나. 네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니?"
"사랑은 무슨,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좋아하는 애도 없어요~ 아이스크림은 그냥.. 맛있어서 먹는 거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 아이스크림이라고 말씀드렸던가요?"
앙드레 글라시에는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정성껏 담은 아이스크림을 소녀에게 건냈다. 잔뜩 얹어진 무지개 토핑은 알록달록한 것이 마냥 화려했다.
"네 입술 같은 분홍색과 그의 눈을 닮은 초록색, 그리고 마리네뜨 너만을 위한 특별한 마법을 장식했단다. 맛있게 먹으렴. 분명 그 아이는 꼭 올 거야."
"글쎄 아니래도요.. 항상 감사합니다!"
천천히 멀어지는 소녀의 뒷모습을 보며 앙드레 글라시에는 생각했다. 남 초롱꽃 색 머리의 소녀가 오늘도 변함없는 색의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간 것을. 마법 같은 사랑의 아이스크림. 한결같은 소녀의 사랑. 그는 사랑을 나누는 이로서 소녀의 간절한 사랑을 응원했다.
"사랑하는 그를 찾으세요. 아가씨. 허허."
*
앙드레 아저씨 특제 사랑의 아이스크림으로 나는 매번 내 사랑을 확인한다. 한결같이 올려진 청량한 에메랄드빛 아이스크림을 보고 난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렇구나, 난 오늘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구나. 또 언젠간 그와 함께 앙드레 아이스크림을 먹을 날이 왔으면 하고 바란다.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서 입에 물고 시간을 봤더니 글쎄.. 맙소사! 지각이다. 오후에 알리야와 함께 과제 하기로 약속했는데! 나는 재빨리 남은 아이스크림을 먹어 치웠다. 띵한 머리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달려 도착한 알리야의 집.
"알리야 나왔어. 헉.. 안경 쓴 아드리앙..!"
그곳에는 아드리앙이 있었다.
"뭐? 아드리앙?"
분명 황당한 표정을 짓는 저 얼굴은 아드리앙인데.. 말하는 투와 행동은 꼭 알리야였다. 알리야가 왜 아드리앙으로 보이는 거지..? 아닌가? 아드리앙이 알리야 흉내를 내는 건가? 나도 마찬가지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에 또 다른 아드리앙이 우릴 불렀다.
"안 들어오고 뭐해?"
아드리앙이 둘..?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냥 온통 아드리앙이었다. 아무리 눈을 비벼봐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아드리앙으로 보였다. 덕분에 과제도 하는 둥 마는 둥 헛소리만 잔뜩 하고.. 내 상태가 영 별로였는지 아드리앙. 아니지, 아드리앙 모습의 알리야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마리네뜨 정말 괜찮아? 아까부터 계속 얼굴이 새빨개."
"어?! 응! 그럼 아드.. 아니 알리야! 나 괜찮아! 그럼! 아무렇지않아!"
아무렇지 않다는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어떻게 된거냐고!! 진짜 어떡해. 사방팔방이 아드리앙이야. 아드리앙이 지금 내 걱정을 아니 알리야지 맞다. 제발 누가 좀 살려줬으면.
"당황하지마세요. 뉴스일뿐이니까. 지금 파리에 빌런이 나타났습니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이 이 소동을 잠재워주겠죠?"
"저기.. 아ㄷㄹ리야 부모님이 오늘 일찍 들어오라고 하신걸 깜빡해서! 나 지금 가봐야할 것 같아. 하하, 그럼 내일봐!"
때마침 흘러나온 뉴스를 듣자마자 나는 그 어느때보다 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만큼 반가운 빌런 소식도 없을거야.
"마리네뜨, 정말 무슨 일 있어?"
자그마한 아드리앙이 날 보고 물었다. 아마 이건 티키겠지? 앙증맞은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풀어진 표정으로 헤벌쭉 웃다가 쿵쿵 땅울림에 입을 꾹 다문채 도리질했다.
"나중에 설명해줄게 티키. 지금은 영웅이 필요한 시간이잖아?"
*
빌런마저 아드리앙으로 보이다니 이건 진짜..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아드리앙 천지라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무슨 일 있어? 마이레이디? 오늘 따라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이네."
오늘만큼은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의 목소리. 아니, 볼 자신이 없었다. 아드리앙 얼굴로 달콤한 말만 해대는 블랙캣을 볼 자신이 없는 거다. 그래도 어쩌겠어. 일단 난 레이디버그인걸. 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파리를 구하기 위해 눈을 질끔 감고 다시 떴을 때 빛나는 녹빛 눈동자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서. 놀란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다 말고 두 번 딸꾹질을 했다.
"이봐, 마이레이디."
이런 심란한 날에도 능글맞은 블랙캣의 말투는 여전했다.
.
어라? 잠시만, 근데 얘만 왜 아드리앙으로 안보이지? 온 세상이 아드리앙인데 너만 너로 보인다니, 웃기다 참. 고양이라 그런가?
"미안미안, 마법이라도 걸린 건지 놀랄 일이 좀 있어서. 자, 그럼 제대로 몸 좀 풀어볼까 야옹아?"
"분부대로 합죠 마이레이디~"
저 앙큼한 고양이 덕분에 제대로 숨통이 트였다. 지금 널 보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는 건 그래서야. 넌 오늘도 변함없이 그냥 그대로 너라서.
"세상이 뒤집혀도 너만은 그대로일 것 같아 블랙캣."